[크로아티아]두브로브니크 120725 - 뜨거운 태양, 파란 바다, 붉은 지붕

 두브로브니크에 오기 전, 간단히 계획을 세웠었어요. 도착하는 첫날엔 오후부터 간단히 구시가를 맛보기로 돌아보고, 둘째날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모스타르로 당일치기를 할 것이며, 셋째날은 구시가를 본격적으로 여유있게 둘러보며 푹 쉬기로요. 나름 합리적으로 계획을 세웠다고 생각하면서 잘 따라갔어요. 다행히 첫째날은 순조롭게 지나가줬어요. 구시가에 다녀와서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숙소에 들어와서 쉬다가, 다음 날 오전에 모스타르로 가는 버스표를 예매하기 위해 버스터미널 창구로 갔죠. 터미널 직원 왈, 모스타르행 버스는 예약이 안 되는 버스니까 다음 날 직접 사야 한대요. 분명히 터미널 직원이 그렇게 말하는 걸 저와 제 친구는 들었어요. 이 이야기만 철썩같이 믿고 다음 날 버스터미널로 다시 갔죠. 그런웬걸, 버스가 꽉 차서 다음 버스를 타라는 겁니다. 세 시간 뒤에나 출발하는 다음 버스를 타면 당일치기는 꿈도 꿀 수 없었어요. 모스타르에 가는 건 일단 미뤄둘 수밖에 없었죠. 버스는 버스대로 못 타고, 날씨는 날씨대로 얄궂고... 맑은 날이 아니면 두브로브니크를 여행하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별 수 없으니 아침부터 준비하느라 설친 잠이나 좀 보충한 다음 나가보기로 하고 숙소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두세 시간 정도 흘렀을까. 눈을 떠 보니, 분명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비가 오는 모양새가 하루 종일 내릴 기세였는데, 창문 틈으로 밝은 햇살이 들어오는 거예요! 금세 기분이 좋아져서는 곧장 구시가로 향했어요.


언제 비가 오기라도 했냐는 듯 하늘도 맑았고, 젖어있어야 할 도로도 비가 내린 흔적도 없이 말라있었어요...아무리 유럽 여름이 습하지 않다고 하지만 이건 좀 신기할 지경이었어요ㅋㅋㅋㅋ


구시가는 전날 가볍게 한 바퀴 돌아서 그랬는지 그렇게 낯설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입장 시간이 늦어 제대로 못 본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쭉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여행 가기 전에 본 두브로브니크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유럽에서 세번째로 오래되었으며, 최초로 일반인에게도 개방된 약국이 있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었어요. 호기심이 생겨 두브로브니크에서 제가 가장 가보고 싶어했던 곳이 되었는데, 구시가 성문을 지나자마자  약국이 있다는 프란체스코 수도원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회랑을 따라 걷다보니 수도원 안쪽으로 아담한 정원을 보게 됩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참 잘 가꿔진 예쁜 정원이었어요.
회랑을 따라 쭉 걷다 보면 나타나는 전시실에는 중세 약국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뭔가 약초가 담겨있을 것 같은 항아리들이 줄줄이 선반에 진열된 모습이에요. 한편 사진에지는 못했지만, 약국 박물관의 벽 곳곳에는 총탄 자국이 곳곳에 남아 있었어요. 사실은 약국 박물관 뿐 아니라 두브로브니크 성곽 내 많은 건물들에서 전쟁의 흔적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하마터면 이런 인류의 귀중한 유산이 유고슬라비아 내전 때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오는 입구에는 실제로 지금도 운영하는 약국이 있답니다. 공교롭게도 찾아갔을 때는 영업을 하고 있지 않았지만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답게, 관광객들의 시선을 잡아둘 만한 특이한 거리 공연도 거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어요.
렉터 궁전에 가기 위해 플라차 대로를 따라 걸었어요. 대로의 끝에 위치한 루자 광장 한가운데에는 '오를란도브'라는 국기 게양대가 있습니다. 이 게양대의 한쪽 벽면에 조각된 사람은 중세 프랑스의 롤랑이라는 기사인데,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한 뒤 북진하는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프랑스 기독교를 지켜낸 기사였다고 해요. 과거에 발칸 반도 전역이 이슬람화되었을 당시에도 끝까지 거의 유일하게 기독교 도시국가로 남은 두브로브니크에서는 롤랑이 충분히 영웅으로 추대받을 만한 상황이었던 거죠.


렉터 궁전에 도착했더니, 실내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어요. 꽤 많은 미술품이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이런 곳을 벌써 며칠째 다니다 보니 딱히 흥미롭게 느껴지지도 않았어요.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를 작품들을 하나씩 지나치는, 어디선가 익숙한 말들 들렸어요. 가이드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던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었어요. 한국 사람들을 이렇게나 많이 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마침 잘 되었다 싶었어요. 얼른 일행인 척 슬쩍 껴서 나름 유익한 관람을 할 수 있었답니다...ㅋㅋ

두브로브니크 관광의 하이라이트, 성곽 투어를 할 차례예요!!! 정말 푹푹 찌는 날씨였지만, 두브로브니크의 풍광을 감상하기에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는 생각으로 성벽에 올랐어요. 두브로브니크의 뒷산(?)인 스르지 산으로 가면 더 좋았을 텐데, 대체 왜 당시에 생각을 못 한 걸까요? ㅠ 하지만 결론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후회는 없습니다. 참고로 성벽투어 요금은 성인 70쿠나, 학생 30쿠나였어요.


사진만 봐도 이 겨울에 더위가 느껴지네요...ㅎㅎ;;;


성벽에 오르자마자, 흰 벽에 붉은 지붕인 예쁜 건물들 사이로 넓은 플라차 대로가 시원하게 뻗어 있었어요.


오노프리오스 분수.
슬슬 성벽을 걷다 보니 푸른 바다와 아찔한 각도의 바위언덕, 그리고 그 위에 성벽과 건물들의 아슬아슬한 모습이 손에 땀을 쥐게 했어요.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붉은 지붕에 회백색 벽...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풍경.

 


멋있어 보이게끔 일부러 꾸며놓은 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환상적인 풍경이었습니다.


통일성에서 오는 아름다움에 뜨거운 태양의 열기도 느끼지 못하고 땡볕에 서서 열심히 셔터를 눌렀습니다.

 


두브로브니크 구시가 자체에는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성벽 투어 하나로 두브로브니크 구시가 관광은 기분좋게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누가 두브로브니크에 간다면 성벽 투어만큼은 무조건 해 보라고 추천할 수 있을 정도로 만족스러웠습니다.

 

한참 성벽 투어를 하면서,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닷빛에 반해서 당장 이곳 바다에 발이라도 담가보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들었어요. 구시가를 아주 자세히 보려고 안 하니까, 예상과 달리 시간적 여유도 꽤 있었어요.


그래서 구시가를 빠져나와 어느 해변으로 가서 마음껏 해수욕을 즐겼죠.
가고 싶으면 가고, 쉬고 싶으면 쉬고.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어요.

 

추운 겨울 밤 이런 글을 쓰고 있으두브로브니크의 태양과 바다, 그리고 지붕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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