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모스타르 120726 - 유럽? 터키? 둘 다!

 크로아티아 여행의 마지막 날. 두브로브니크에서 이틀간 충분히 구경을 마쳤다고 판단하고, 마지막으로 둘째 날 다녀오려다 실패했던 모스타르에 가기로 결정했다. 혹여나 버스 티켓을 구하지 못했던 전날의 상황이 다시 일어날까봐 밤에 미리 144쿠나에 모스타르행 왕복 버스 티켓을 예매해 두었다. 예매 잘만 되는구만, 버스 티켓 창구 직원은 왜 예매가 안 된다고 한 거지? 아무튼 다음 날 아침 무사히 모스타르로 가는 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다.


두브로브니크에서 국경을 넘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네움에 있는 휴게소에 잠시 멈췄다. 스플리트에서 두브로브니크 갈 때도 들른 휴게소였고, 모스타르 왕복 버스 역시 이 휴게소에 들렀다. 보아하니 두브로브니크를 오가는 모든 버스가 이 휴게소에 들르는 듯. 이전에 언급한 적 있지만, 보스니아의 유일한 항구가 바로 이 '네움'이라는 도시이다. 바로 아랫 동네 두브로브니크와는 달리 고요하고 한적한 느낌의 마을이었다.

네움과 모스타르는 같은 나라이니 두브로브니크에서 국경만 넘으면 여권 검사같은 것 없이 그냥 다이렉트로 갈 줄 알았는데, 예상 외로 크로아티아 국경을 한 번 더 넘어서 보스니아로 다시 들어간다. 불편하게시리... 그렇게 편도 1회에 총 세 번의 국경을 넘고, 여권 검사도 세 번 한다. 그럼 도장이라도 좀 찍어주지, 여권에 도장도 찍어주지 않는다.

 

  
중간에 여러 곳을 서며 세 시간 반을 간 끝에 드디어 모스타르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큰 길가에 모스타르 관광 지도가 크게 걸려있는 게 보인다. 가이드북에도 간략하게나마 나와 있는 동네라 그냥 대략적 특징만 알고 갔는데, 다행히도 이 지도 덕분에 버스터미널에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디가 어디인지를 알 수 있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라는 나라가 조금 생소할 수 있어서 간략하게 소개하려고 한다. 이 나라는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와 함께 원래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구성하고 있다가 독립해 나온 나라이다.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다른 국가들과 조금 다른 점이라면, 이 나라는 무슬림인 보스니아인, 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인, 그리고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인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였다는 점이다. 때문에 독립하자마자 민족 분쟁이 발생해서 3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내전을 겪었다고 한다.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이 된 상황이지만, 여전히 생활 수준은 크로아티아나 세르비아에 비해 낮은 편. 도로 풍경을 보고 바로 실감할 수 있었는데, 크로아티아는 싱그럽고 로맨틱했지만, 보스니아는 황량하고, 건물도 몇 없으면서 그나마 있는 건물들도 칠이 벗겨지고 꾀죄죄한 건물이 상당수였다.

 그 중 우리가 찾아간 모스타르는 기독교와 이슬람이 잘 융화를 이루고 있는 예쁜 마을이었어요. '스타리 모스트'라는 다리가 가장 유명하지만, 한편으로 우리에게는 김정남의 아들, 즉 김정일의 손자인 김한솔이 학창 시절을 보냈던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버스터미널에서 보스니아 화폐인 '태환 마르카(Convertible marka)'를 사용할 만큼만 인출하고 나서 구시가로 향했다. 버스터미널에서 구시가까지는 걸어서 약 15분 정도 소요된다. 도착했을 때는 점심 때라 우선 식사부터 하고 시작하기로 했다. 이젠 식당 뒤지기도 귀찮아서 호객꾼들이 제발 우리 좀 잡아가 주기를 바랄 정도가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호객꾼이 나타났고, 순순히 따라가줬다.

오우... 호객꾼 따라간 것 치고는 만족스럽다. 무엇보다 전망이 훌륭했다. 주문한 음식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케밥 비슷하게 왼쪽 빵에 고기와 야채를 싸 먹는 형태의 음식이었다. 음식 맛도 나름 괜찮았다. 레모네이드가 하나도 시원하지 않았던 것만 빼면 말이다.

가격은 전부 해서 대략 30마르카. 결코 싼 가격은 아니었지만, 마르카를 당장 어떻게든 쓰지 않으면 모스타르를 떠난 후 어디서도 사용할 수 없으니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덧붙이자면, 보스니아 화폐는 2마르카=1유로로 환율이 고정되어 있다.

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모스타르 구시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모스타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다리의 이름은 '스타리 모스트(Stari Most)'이다. '오래된 다리'라는 뜻인데, 지금은 무슬림 마을과 기독교 마을을 이어주고 있기 때문에 평화의 상징처럼 되어 있다. 16세기 중반에 세워졌다가 보스니아 내전 당시 폭격으로 붕괴되었는데, 다행히 국제적인 지원을 받아 원래 모습 그대로 복구되었다고 한다. 마을 분께 스타리 모스트에 관한 설명을 들었는데, 다리에 사용된 돌은 처음 다리를 만들 당시에 돌을 가져왔던 곳에서 똑같은 방법으로 채석했으며, 무엇보다 16세기의 방식 그대로 계란 흰자를 접착제 삼아 다리를 복구했다고 한다. 무척 놀라웠다. 요즘 건축 기술이 얼마나 좋은데 그걸 거부하고 원래 방식을 고수한 것부터가 놀라웠지만, 그 방식이라는 게 다른 것도 아니고 '계란 흰자'로 돌을 붙이는 거였다니... 계란 흰자가 그런 훌륭한 접착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경사가 굉장히 가파른 스타리 모스트에 오르니, 한적한 마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여태까지 큰 성당들만 많이 봤었는데, 모스크가 보이니 왠지 신기했다. 크로아티아의 성당들은 패스해왔지만, 모스크는 한 번 들어가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다리를 건너 슬렁슬렁 모스크로 움직였다.
이름은 코스키 메흐메드 파샤 모스크. 모스타르에서는 제일 큰 모스크라고 한다. 입장료는 크로아티아 쿠나로 지불했는데, 16쿠나로 생각보다 비싼 편이었다.


모스크 내부. 이슬람풍의 카펫과 아랍 문자, 화려한 벽 장식이 참 이국적이고 아기자기했다. 서울 한남동 모스크에 비해 규모는 한참 작았지만 내부 장식은 훨씬 멋진 느낌이었다.


이 작은 마을에 관광객은 발 디딜 틈 없이 많았다. 생소한 나라이다 보니 한국 사람은 우리 셋 외에는 절대로 없을 거라고 친구들과 이야기했었는데, 무려 네 분이나 봤다. 생각보다 세계로 멀리 뻗어 나가는 한국인!
마을 한 구석에는 이런 시장도 있다. 히잡을 쓴 여성들도 꽤나 많다. 정말이지 유럽이 아니라 터키의 어느 시골 마을에 온 기분이 들었다.

 

근데, 이 이국적이고 아기자기한 마을은 나만 좋았나 싶다. 좀 더 구석구석 돌아보려고 하는데 마을이 작아서 그런지 친구들은 볼 건 별로 없는 것 같다 먼저 버스터미널 방향으로 천천히 돌아가겠단다. 그래서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로.


 스타리 모스트를 다시 건너 기독교 지구에 왔다. 기독교 지구라 좀 유럽적일 줄 알았더니, 건넛마을에서 풍기던 이슬람 분위기는 여기에서도 계속 난다. 그 예로 터키식 목욕탕. 지금은 목욕탕이 아니라 보스니아 내전에 대해 알려주는 작은 전시관으로 바뀌었지만. 들어갔다가 친절하고 영어 잘 하는 현지인 아저씨를 만난 덕분에, 위에서 언급한 다리 복원 과정 등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스타리 모스트의 다이버. 이곳의 다이버는 모스타르의 명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야기만 들었지 직접 볼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친구들 안 따라간 보람이 있었다.


 네레트바 강은 물이 참 맑고 예쁘다. 아담한 건물들과 어우러져 동화같은 풍경을 자아낸다.


 무슬림 마을은 거의 모든 건물 1층이 기념품점이었다. 좀 더 가까이에서 현지인의 생활 모습을 볼 수 있는 마을이면 참 좋겠는데, 너무 상업화되었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입구까지만 들어갔던 터키인 가옥. 기념품까지 사고 나니 마르카가 애매하게 남아서 내부로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다른 곳에서 보지 못한 이국적인 분위기의 외관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렇게 마을을 구석구석 더 돌아본 후,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버스터미널로 돌아가기로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유럽인 듯 터키인 듯, 이 작은 마을의 매력에 퐁당 빠졌다.

 돌아가는 길에 작은 공동 묘지를 발견했다. 우리와 다르게 공동 묘지가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터미널로 돌아가는 길에 들른 마트에서 신기한 걸 발견했다. 보스니아 어느 동네에까지 진출해 있는 롯데 음료수. 지금껏 유럽 어느 곳에서도 본 적이 없는데, 상상도 못한 곳에서 발견하다니 뭔가 아는 사람을 만난 듯한 반가운 느낌.


 이건 스플리트에서 처음 맛본 이후로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여행 내내 참 맛있게 먹은 '환타 Shokata맛'. 맛은 요즘 파는 스위티에이드에 탄산을 섞은 듯한 맛이다. 정확히 뭔지 궁금해져서 Shokata를 검색해 보았다. 당연히 라임이나 스위티 비슷한 과일 종류겠거니 했는데, 상상도 못한 '딱총나무' 맛이라고 한다. 오, 레어한데? 이거 마음에 들었어. 호감도가 더욱 올라갔고, 여행 내내 제 사랑을 듬뿍 받은 음료수가 되었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잠시 앉아있는데, 다른 곳에서 한참 구걸을 하던 보스니아 꼬맹이들이 우리 주변을 맴돌기 시작한다. 내가 터민러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이 아이들을 마주친 친구는, 쟤들이 아까 자기한테 인종차별도 했다면서 절대 못 본 척하라고 알려줬어요. 그래서 그냥 고개 숙이고 폰만 보고 있는데, 아이 하나가 제 무릎을 툭툭 치는 것이다. 요번엔 또 무슨 짓을 하려고...? 못된 녀석들...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그 아이를 봤는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고는 어디론가 가버리는 거다. 친구가 이야기해준 것과 사뭇 다른 반응에 머쓱했다. 음... 내가 괜찮은가?ㅋㅋㅋ

 이 아이들을 보고, 아름다운 관광지인 이곳이, 한편으로는 아이들을 구걸하게 할 정도로 아직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은 곳이구나 하는 안타까움도 들었다.


멀리 언덕 위로 흰 십자가가 보인다. 내전 때 가톨릭계 크로아티아인들이 많이 숨졌는데, 그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십자가라고 한다.

이국적이고 아름다웠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모스타르 여행. 많은 생각들을 접어두고 두브로브니크행 버스에 올랐다.


한참 맑다가 소나기가 확 쏟아지더니, 창밖에 예쁜 무지개가 생겼다. 참 소박한 풍경에 감탄하며 크로아티아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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