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프라하 140114 - 프라하 최고의 레스토랑 '벨뷰(Bellevue)'

 카를슈테인에서의 아픈 기억을 뒤로 하고, 프라하에 도착해서 우선은 숙소로 가기로 결정했다. 예정보다 프라하에 너무 일찍 돌아온 탓에 어디를 먼저 가야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숙소에 돌아와 가만 앉아있다가, 프라하에 도착한 지 만 하루가 다 되어가는 마당에 아직까지 제대로 된 식사 한 끼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날 저녁은 달랑 뜨르들로 한 조각, 아침엔 시간 없어서 초코바와 우유로 대충 때운 게 전부. 그나마 아침에 먹었던 우유가 말썽을 일으켰는지 카를슈테인에서부터 속이 영 불편해서 돌아다니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쓰린 배를 잡고 가까스로 숙소에 들어가 속을 비우고 나니 (레스토랑 포스팅의 시작이 이래서 ㅈㅅㅠㅠ) 배가 무지 고팠고, 다른 것보다 점심을 해결하는 게 급선무였다.

 사실 프라하에 오기 전부터 가 보고 싶다고 생각한 음식점이 몇 군데 있었지만, 이전 포스팅에 언급했듯 사실 난 지금껏 혼자 밥을 먹으러 간 게 채 열 번이 안 된다. 혼자 밥 먹으러 나가느니 차라리 귀찮아도 집에서 만들어 먹고 말지 하는 생각을 가진 내게 이건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이런 나이기 때문에, 혼자 식사를 해결하는 일은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가장 우려했던 문제였다. 출발하기 며칠 전, 혼자 밥은 잘 먹고 다닐 수 있겠냐는 누군가의 물음에 "에이... 별 문제 있겠어? 어떻게든 잘 먹고 다니겠지. 걱정할 것 없어!"하며 자신있게 대답했는데, 그 때의 패기는 프라하 오는 비행기에 놓고 내린 듯ㅠ 먹고 싶은 건 잔뜩 조사해왔는데 그걸 먹으러 가질 못하는 게 스스로도 답답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먹어야 보름을 버티고 한국까지 살아 돌아갈 테니, 생존을 위해서라도 억지로 밥을 먹으러 나가기로 했다.

 

무엇을 먹을지 한참을 고민한 끝에 찾아간 곳은 프라하에서도 아주 유명한 레스토랑인 '벨뷰(Bellevue)'. '트립어드바이저의 프라하 레스토랑 랭킹 1위', '미슐랭 가이드에 몇 년째 소개되고 있는 레스토랑'이라는 두 가지 수식어로도 충분히 방문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곳을 찾아간 가장 큰 이유는, 혼자 밥 먹기의 초짜 입장에서는 골목 구석구석에 있는 와일드한 분위기의 로컬 식당들보다는 부드러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고급 레스토랑부터 시작하는 것이 한결 마음이 편하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에서였. 배낭여행객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대이지만, 이 정도 코스 요리를 서유럽에서 맛보려면 값이 대략 두 배 정도 들 거라는 정보를 들은 것도 결정에 한 몫 단단히 했다.

 그러나, 막상 레스토랑 앞에 도착하고 보니 다시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혼자 온 손님도 받아줄 지가 첫번째 고민이었고, 서유럽보다 싸다고는 하나 여전히 나에게 있어서는 비싼 가격도 걱정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 블타바 강변 앞에서 꾸물거리다가, 다시 레스토랑 앞을 서성거리다가, 이러기를 10분째.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마침내 용기를 내어 문을 열었다.

 

 "Hi."

 카운터에 서 있던 직원이 인사를 건넨다. 혼자였는데도 생각보다 호의적이었다.

 "예약하셨나요?"

 "아뇨. 그리고 혼자 왔어요.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예약하시겠어요? 지금 예약하시면 두 시에 식사 가능합니다."

 "그럼 두 시로 예약해 주세요."

 주사위를 손에서 떠나보내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곧바로 음식을 먹을 수는 없었어도 조금만 기다리면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를 하며 한 시간 정도 가볍게 산책을 하고 예약한 시간에 레스토랑으로 돌아왔다.

 


위치는 국립극장에서 카를 다리 방향으로 걷다 보면 찾을 수 있는데, 꽤 훌륭하다. 블타바 강변에 있어 창가에 앉으면 카를 다리와 프라하 성이 펼쳐지는 멋진 전망을 갖추고 있다.


레스토랑 앞을 화려하게 장식한 각종 이력들. 특히 3년 연속의 미슐랭 가이드 인증 마크가 눈에 띈다.

 

레스토랑에 들어가니 예약을 도와줬던 카운터 직원이 입고 있던 외투를 보관해주겠단다. 이런 서비스가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있는 서비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처음이었기 때문에 놀라웠다.


외투를 맡기면 주는 번호표.


단정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의 홀. 평일 낮이라 식사하는 사람들은 간간히 보이는 정도였다.


이게 웬 떡인지! 자리를 따로 이야기 안 했는데도 창가쪽으로 예약되어 있다니ㅎㅎ 시작부터 느낌이 좋았다.


식사하는 내내 카를 교와 프라하 성을 감상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 곳은 코스로 요리를 제공하는데, 메인요리와 디저트 혹은 전채와 메인 요리가 제공되는 2코스, 그리고 세 가지가 모두 나오는 3코스로 나뉘어 있고, 메인요리와 디저트를 메뉴판에 나온 여러 가지 요리 중 한 가지씩 선택하는 형식이다. 가격 때문에 고민하다가 겨우 마음먹고 들어왔는데, 초반부터 지르기에는 손이 떨려서 전채를 포기하고 메인요리와 디저트의 2코스로 주문해 보았다.

 


전채를 주문하지 않아도 스프는 기본으로 제공되는 듯하다. '고기 라비올리를 곁들인 버섯크림스프'.

처음 나온 스프를 보고 든 생각은, '정갈하긴 하네. 근데 스프가 스프지, 별 거 있겠어?'

하지만 한 번 맛을 보니 뭔가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그런 맛이었다. 크림의 풍부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버섯의 깊은 향이 어느 한 쪽도 죽지 않고 온전하게 전해지면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여지껏 먹어 본 스프 중 가장 환상적이었던 듯.

 


다른 유럽 레스토랑들과 달리 여기는 빵값을 따로 받지 않는다. 그렇지만 빵으로 배채워서 메인 요리를 못 먹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할 것.


메인 요리. 요리 제목은 'Roasted fillet of veal, white root vegetables, ox cheek and potato pie, morels, porcini sauce', 즉 '구운 송아지 안심, 흰뿌리채소, 소 볼살을 곁들인 감자파이, 곰보버섯, 포르치니 소스'. 이름 한 번 길다;;

 

맛은? 정말 말이 필요없었다. 감동! 스테이크는 입에 넣으면 녹을 듯 부드러우면서 육즙이 흘러내리지 않고 고기에 제대로 배어있었고, 감자 파이도 고소하고 맛있었다. 아, 새하얀 포르치니 소스 위에 있는 까만색의 열매같은 건 사실 뭔지 잘 모르고 먹었는데, 우리말로 '곰보버섯'이라고 부른다는 걸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뭐... 맛있게 먹었으면 된 거니까.

 요리도 요리였지만, 개인적으로 접시가 참 인상적이었다. 접시 테두리가 마치 접시의 정중앙으로 향하는 느낌의 무늬가 마치 무대 중앙의 주인공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쏘아 주듯 요리를 돋보이게 만든다.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쓰다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디저트가 나오기 전, 입안을 정리해 줄 간단한 소르베가 나왔어요. 사과 퓨레와 요거트 거품을 올린 샐러리 소르베였습니다. 사과의 달작지근한 맛과 샐러리의 상쾌한 향, 그리고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 새콤함을 더해주는 요거트 거품의 조합이 일품. 평소 사과맛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건 의외로 참 맛있게 먹었다.


사진만 봐도 다시 먹고 싶어지는...


정식 디저트. Chocolate cremeux with caramelised popcorn 어쩌고 하는 이름 외우기도 힘든 요리였다. 예술 작품을 방불케하는 압도적인 비주얼... 가장 아래에 깔린 초코무스 케이크와 그 위에 살포시 올라간 카라멜 팝콘, 그리고 한 스쿱의 바나나 아이스크림까지... 뼛속까지 단맛이 느껴질 정도였다. 단 거 좋아하는 내 입맛에는 딱.


종업원이 권했을 때 당연히 돈 낼 걸 알면서도 무심코 주문을 해버려서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마신 민트티. 그렇지만 향만큼은 만족스러웠다.

 

이렇게 식사를 하고 나니 어느 새 한 시간 반이 흘러 있었다.

 

물과 민트차를 포함한 총 금액은 1,350코룬, 대략 7만원 정도. 좀 센 가격이긴 했지만, 그나마도 서유럽이 아니라서 가능한 가격. 여행 와서 한 끼 정도 이렇게 먹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잘 한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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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히티틀러 2014.02.22 16:4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전 레스토랑에서 혼자 들어가서 식사하는건 좀 무서워서 맨날 샌드위치 먹고 그랬는데, 정말 대단하시네요!
    저도 저 레스토랑 한 번 가보고 싶어요ㅎㅎ

    • 준팍 2014.02.22 19:05 신고 수정/삭제

      아무래도먹고살아야하니까...뭔들못할까요...ㅋㅋㅋ
      사실한국에서는진짜꿈도못꿀일이에요ㅠㅠㅋ

  • 내멋대로~ 2014.02.22 17:4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뷰를 보니 대충 어디쯤일지 감이 오네요
    음식이 맛나보여요.....

    프라하 다시 가고 싶네요. 딱 1년전 다녀왔는데..

    • 준팍 2014.02.22 19:10 신고 수정/삭제

      프라하가진짜좋죠...ㅠㅠ오죽하면다시찾아갔겠어요ㅠㅋ
      이레스토랑은위치찾기가쉬운게또다른장점이에요ㅋㅋ
      구시가에서카를교가는길목에있는횡단보도안건너고바로왼쪽으로턴해서쭉나가시면돼요ㅎ

  • 좀좀이 2014.02.26 08:4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성에서 실패를 경험하시고 프라하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셨군요!^^
    디저트가 매우 아름다운 모습인데요? 먹기 아까울 거 같아요 ㅎㅎ

    • 준팍 2014.02.27 01:08 신고 수정/삭제

      그렇죠?하나하나공들여쌓은탑같이느껴져서얼른손이가질않더라구요ㅎㅎ

  • 우유 2014.04.10 14:48 ADDR 수정/삭제 답글

    잘봤습니다..저도 5월에 혼자가는데 덕분에 용기내서 가볼 수 있을거 같아요..7만원보다더 좀 저렴한 코스도 있겠죠? ㅎㅎ 좋은 리뷰 감사해용^^

    • 준팍 2014.04.11 23:00 신고 수정/삭제

      원래는7만원보다싸요ㅎ제가미네랄워터도시키고민트티도시키고해서저가격인거예요ㅎ사실싸다고해봤자만원정도밖에차이가안나긴하지만요...ㅎ
      근데가시면후회는안하실것같아요!조금값이나가긴해도다녀오고나니정말가길잘했다는생각이들었거든요^^

  • manufacturers 2014.11.05 10:09 ADDR 수정/삭제 답글

    정말 귀하의 블로그를 좋아